동생과 함께 떠난 상하의 감성 길목과 매운 맛의 야경
상하이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달려간 곳은 푸른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길게 그늘을 드리운 울창한 거리였다. 나지막한 건물과 세련된 매장들이 늘어선 이 거리는 당장이라도 카메라를 들고 플래시를 터뜨려야 할 것 같은 독특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니 인플루언서나 쇼핑몰 모델로 보이는 사람들이 저마다 멋진 포즈를 취하며 촬영에 한창이었다. 나 역시 한때 인플루언서를 꿈꿨으나 팔로워 0명의 벽을 넘지 못하고 강제로 포기했던 화려한(?) 과거가 떠올랐다. 여기서라면 나도 인생 사진 한 장쯤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동생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가로수 옆에 자리를 잡았다.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다 문득 은은한 꽃향기에 이끌려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담하지만 감각적인 아치형 천장 아래 갖가지 생화가 화려하게 피어 있는 작은 꽃집이었다. 예전에 플라워 클래스를 이수하며 꽃을 배웠던 직업병 탓일까, 예쁜 꽃들을 보며 감탄하는 것도 잠시 내 머릿속엔 자꾸 현실적인 생각이 스쳤다. 『저 싱싱한 생화들, 재고 관리는 도대체 어떻게 다 하는 걸까?』 낭만적인 꽃집 앞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걱정을 하는 나를 보며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졌다.


다리가 뻐근해질 즈음 근처 테라스 카페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청했다. 한숨 돌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윤기 나는 갈색 털의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치며 다가왔다. 미친 듯이 신나서 고개를 흔드는 녀석이 너무 귀여워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딱 봐도 범상치 않은 혈통과 몸값을 자랑하는 비싼 고급 견종 같아 차마 손을 대지 못하고 눈으로만 예뻐해 주었다.

카페를 나와 귀여운 캐릭터 숍에 들렀다. 진열대에는 보라색 모자를 쓰고 눈을 감은 채 앙증맞게 미소 짓는 세균맨 인형들이 대거 쌓여 있었다. 똑같은 표정으로 줄지어 있는 인형들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화려한 야경에 취하고 마늘 향 샤오룽샤에 매료되다
해가 지자 동생이 미리 예약해 둔 불가리 바(BVLGARI BAR)로 이동했다. 사실 우리 자매는 평소에 분위기 있는 칵테일바에서 폼 잡는 타입이 전혀 아닌지라, 고급스러운 조명 아래 자리를 잡자마자 서로 얼굴을 보며 빵 터졌다. 하지만 잔 뒤로 펼쳐지는 황푸강과 푸둥의 럭셔리한 야경을 보니 입이 떡 벌어졌다. 주문한 칵테일과 함께 안주로 치즈, 하몽, 연어 카나페를 시켰는데 거물급 식사를 하듯 폭풍 흡입을 해버렸다.


루프탑 테라스로 나가니 때마침 와이탄 건물들의 점등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동방명주와 마천루들이 황금빛, 붉은빛으로 차례로 물드는 장관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사방에서 날씬한 인플루언서들이 인생샷을 남기느라 바빴고, 그 사이에서 나는 반건조 오징어처럼 구석에 찌그러져 황홀한 야경을 감상했다.

야경에 눈이 호강했으니 이제 입을 즐겁게 해줄 차례였다. 유명 마라룽샤 전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메뉴판을 보더니 동생이 개구리 튀김 꼬치를 선뜻 주문했다. 평소 개구리 캐릭터인 케로피를 지독하게 좋아하는 동생인데, 캐릭터와 음식은 별개라며 맛깔스럽게 먹는 모습에 경악했다. 하긴, 어떤 형태든 대상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게 중요한 법이겠지.


이어 기대하던 민물가재 요리 샤오룽샤가 나왔다. 영화 속 장첸처럼 마라 맛을 시킬까 고민했지만, 진정한 한국인답게 다진 마늘이 산처럼 쌓인 마늘 맛을 선택했다. 직원이 위생장갑을 끼고 친절하게 가재 껍질을 일일이 까주는데 정말 편했다. 만약 장첸이 껍질을 직접 깔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면 까다가 화가 나서 패싸움이 났을지도 모른다. 마늘 양념에 촉촉하게 적신 가재 살은 감칠맛이 폭발했다.


옥수수 음료에서 세숫대야 쌀밥까지, 잊지 못할 상하이의 식도락
다음 날 아침, 평소 혼자 여행하면 대기 줄 없는 근처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던 나였지만 미식가 동생 덕분에 아침부터 특별한 음료에 도전했다. 창밖으로 동방명주가 아득히 건너다보이는 고층 카페에서 코코넛 밀크 베이스에 진짜 옥수수 알갱이와 쫀득한 밥알이 씹히는 음료를 마셨다. 한 입 삼키고는 지그시 동생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동생아, 이제 별의별 음식 도전은 여기서 그만해도 될 것 같아…』

점심으로는 현지인들이 줄을 서서 먹는 마라반 맛집을 찾아갔다. 고소하고 매콤한 땅콩 소스가 입안을 맴도는 마라반을 흡입하고 있는데, 주변 테이블을 보니 다들 옆 가게에서 군만두(성젠바오)를 사 와 함께 곁들여 먹고 있었다. 다른 식당 음식을 가져와 자연스럽게 셰어해 먹는 문화가 신선하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바삭하게 튀겨진 만두 피 속에서 육즙이 팡 터지는 성젠바오와 마라반의 조화는 단연 으뜸이었다.


식사 후 상하이의 시그니처 랜드마크인 동방명주 바로 앞 광장으로 향했다. 하늘 높이 솟은 동방명주를 한 프레임에 다 담아보겠다고 바닥에 납작하게 누워서 낑낑대며 각도를 잡고 있었다. 그러자 곁에서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던 동생이 나지막하게 한마디 던졌다. 『언니, 지금 뭐해? 카메라인 줌아웃 기능 쓰면 되잖아.』 순간 민망함에 사로잡혀 무안하게 줌아웃 버튼을 눌렀다. 과연, 손가락 터치 한 번에 거대한 탑이 가볍게 들어왔다.


공항으로 가기 전 마지막 한 끼를 위해 들른 일반 식당. 하루 한 끼는 정직하게 쌀밥을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토종 한국인 여성답게 당당하게 『여기 밥 제일 큰 걸로 주세요!』라고 주문했다. 잠시 후 종업원이 들고 온 것은 밥공기가 아니라 세숫대야 수준의 대형 도자기 대접에 고깔처럼 고되게 쌓인 대형 쌀밥이었다. 옆에 놓인 토마토 계란 볶음 접시가 초라해 보일 만큼 압도적인 공기밥 비주얼에 우리는 배를 잡고 구르며 웃었다. 엉뚱하고 유쾌했던 동생과의 상하이 여정은 그 푸짐한 쌀밥 그릇처럼 마음도 배도 한가득 채워진 채 끝을 맺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