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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살이 중에 만난 우리 집 식구들의 서귀포 유람기

2021.8.28 – 2022.6.12

제주에 터를 잡고 살아가다 보면 문득 육지에서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오곤 한다. 이번에는 고모와 고모부, 그리고 동생까지 우리 가족들이 제주로 여장을 풀었다. 남들에겐 설레는 여행지이지만 내게는 일상의 터전인 동네로 식구들이 놀러온 셈이라 한결 마음이 넉넉해졌다. 익숙한 바다 향기와 돌담길을 따라 식구들의 가벼운 발걸음을 안내하는 동안, 나 역시 여행자의 눈으로 내가 사랑하는 섬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가족들과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에메랄드빛 해변으로 유명한 함덕이었다. 수심이 얕고 모래가 고와서 언제 가도 조그만 아이들이 튜브를 타고 신나게 물놀이를 즐기는 정겨운 풍경이 펼쳐진다.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다 함께 해변 산책로를 걸으니 묵은 피로가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맑고 아늑한 함덕해변 산책로와 파란 바다 풍경

시원하게 탁 트인 함덕의 바다 수면 너머로 뭉게구름이 수놓아진 하늘이 시원스럽게 펼쳐졌다. 바닷물이 워낙 투명해서 해안가 얕은 물 밑으로 검은 현무암 돌들이 비쳐 보일 정도다. 식구들도 연신 바다를 바라보며 탄성을 내뱉었고, 나는 나대로 '역시 우리 동네 바다가 제일이지' 하는 괜한 뿌듯함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투명한 수심과 에메랄드빛 물색이 돋보이는 함덕 해변 전경

민속촌에서 찾은 소소한 웃음과 서귀포의 맛있는 밤

며칠 뒤에는 옛 제주의 삶이 그대로 남아있는 표선 민속촌으로 둘러보러 떠났다. 돌담길을 따라 걷다 발견한 소원지 묶음 사이에서 눈에 띄는 문구 하나를 발견하고 한참을 빵 터졌다.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적어둔 『어제 산 로또 1등, 1등 힘들면 2등이라도 주세요』 라는 절박하고 진심 어린 간절함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빵 터져 사진으로 남겼다. 바로 옆 울타리 안에는 윤기가 흐르는 검은 깃털과 벼슬을 자랑하는 특이한 닭들이 오손도손 거닐고 있어서 보는 재미를 더했다.

민속촌 돌담에 매달린 재치 있는 로또 당첨 소원지
민속촌 사육장 내부의 독특한 오골계 모습

저녁엔 맛있는 회를 먹으러 자리돔횟집으로 향했다. 싱싱하고 번뜩이는 고등어회가 접시 가득 깔끔하게 썰려 나왔다. 사실 우리 고모부는 아주 어릴 적부터 남다른 낚시광으로 유명하셨는데, 정작 본인은 회를 별로 즐기지 않으신다는 반전 매력이 있으시다. 그래서 고모부를 위해 노릇노릇 고소하게 잘 구워진 생선구이도 함께 주문했다. 물론 생선구이라면 자다가도 눈을 뜨는 내가 고모부 몫까지 절반 넘게 뺏어 먹어 버렸다.

정갈하게 썰려 나온 붉은 빛깔의 고등어회 한 접시
바삭하고 노릇하게 구워진 큼직한 생선구이

배를 든든히 채운 뒤 서귀포 올레시장 주변의 야시장 축제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끌벅적한 밤거리 분위기 속에 자리를 잡았는데, 고모가 맥주 잔을 들더니 『난 혼자 다 못 마시겠으니 너희 둘이 나누어 마셔라』 라며 맥주를 기울여 주셨다. 그런데 거품만 한가득 컵에 차오르는 모습을 보며 동생과 나는 예전 유명했던 '아이유 맥주 따르기' 짤이 떠올라 한동안 깔깔대며 웃었다.

거품이 가득 차오르게 따른 맥주 잔으로 건배하는 순간

야시장을 둘러본 후엔 평소 꼭 들러보고 싶었던 서귀포 수제맥주 명소 '제주약수터'로 향했다. 가게 안은 은은한 조명과 특유의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힙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맥주 원두와 맥아 샘플, 무지갯빛 글라스가 진열된 카운터도 감성적이었고, 귀여운 디자인의 굿즈들이 많아 맘에 드는 몇 가지를 구매했다. 맥주 한 잔만 마셔도 금방 알딸딸해지는 알코올 약체이지만, 이 매력적인 보틀 포장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제주약수터 매장 내부의 감각적인 맥주 잔 및 재료 진열대
제주약수터 매장 앞에서 손에 든 포장 수제맥주 보틀

쇠소깍의 푸른 비경과 느긋한 서귀포 카페 투어

다음날 아침 산책길에는 쇠소깍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산책로 입구 표지목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뱀 주의' 경고판을 발견했는데, 내가 뱀띠라 그런지 『내가 뱀띠인 건 또 어떻게 알고 이런 걸 딱 준비해 뒀지』 하고 속으로 피식 웃으며 걸었다. 흐릿한 나뭇잎 사이로 들려오는 새소리와 시원한 바람이 아침 기운을 산뜻하게 깨워주었다.

쇠소깍 산책로 입구 나무에 선명하게 붙은 뱀 주의 푯말

고모와 고모부는 숙소에서 쉬시겠다고 하셔서, 오랜만에 동생과 둘만의 여유를 즐기고자 유명한 '유동커피'로 갔다. 바리스타 수상 경력이 화려한 곳이라 기대가 컸는데, 바삭한 크로플과 달콤 쌉싸름한 시그니처 음료를 즐기며 오랜만에 동생과 도란도란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 자체가 참 평화로웠다.

유동커피의 시그니처 시원한 음료들과 먹음직스러운 크로플

오후에는 다시 가족들과 다 같이 모여 쇠소깍의 핵심 경관을 감상하러 올라갔다. 내가 제주에서 좋아하는 스팟 베스트 200곳 중 단연 손에 꼽히는 명소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이루어진 에메랄드빛 계곡 위로 울창한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그 사이로 유유히 전통 조각배 나룻배를 노 저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한가로워졌다.

절벽과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깊고 푸른 쇠소깍 수면
쇠소깍 수면 위에서 조각배를 타며 자연을 즐기는 사람들

산책을 마친 뒤에는 근처 귤나무 숲 속에 우뚝 선 테라로사 제주점으로 이동했다. 제주 현무암 돌담과 커다란 통창, 아늑한 벽돌 건물 레이아웃이 매력적인 카페였다. 과거 카페 알바 5년 차 베테랑 경력을 지닌 나로서는 라떼아트 모양을 한참 유심히 관찰하곤 했는데, 예쁜 하트 라떼를 마시며 야외 테라스 햇살을 즐기니 더할 나위 없이 따스했다.

감귤나무와 돌담에 둘러싸인 테라로사 서귀포점 입구 간판
하트 라떼아트가 그려진 부드러운 카페라떼 한 잔

해질녘에는 서귀포 올레시장에 다시 방문하여 숙소에서 먹을 횟감을 떴다. 모둠회 접시들이 색색깔 가격표와 함께 수놓아진 생선 가게 좌판을 둘러보다가, 옆에 있는 수조통 안에 담긴 싱싱한 개불 무리를 발견했다. 물속에서 물병과 함께 살지럭거리는 특이한 비주얼에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며 재미난 상상에 잠기기도 했다.

서귀포 매일올레시장 내부의 정갈한 포장 회 판매대
수조 안 플라스틱 통에 가득 담겨있는 꿈틀거리는 개불들

블루리본 맛집의 깊은 맛과 외돌개·주상절리의 웅장함

제주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아침 식사는 예전에 우연히 가보고 반했던 생선조림 식당으로 정했다. 유리문 입구에 매년 줄지어 붙은 블루리본 스티커들이 이 집의 대단한 내공을 증명하고 있었다. 자극적이거나 너무 짜지 않으면서도 양념이 칼칼하고 깔끔하게 쏙 베어 있어, 입이 유독 짧으신 우리 고모부마저 『이 집 조림 진짜 맛있다』 라며 밥 한 그릇을 싹 비워내셨다.

식당 유리 출입문에 연도별로 빽빽하게 붙어있는 블루리본 스티커들
감자와 무가 큼직하게 들어간 진하고 칼칼한 갈치·생선조림

든든히 배를 채우고 외돌개와 황우지 해안 산책로 방향으로 산책을 나섰다. 잔잔한 먹구름 아래 넓게 펼쳐진 서귀포 해안가 바위섬 풍경이 다채로웠다. 천연 바위 선선한 풀장처럼 형성된 황우지 선녀탕에는 이미 수영복을 입고 신나게 다이빙과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시원하게 풍덩 빠져 헤엄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서귀포 외돌개 해안가의 탁 트인 거친 암석 바다 전경
천연 암석 물놀이장 황우지 해안에서 수영을 즐기는 피서객들

이어서 도착한 대포주상절리대는 언제 보아도 자연이 선사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오랜 세월 뜨거운 용암이 바닷물과 만나 식으며 형성된 다각형 기둥 모양의 수직 절벽이 매끄럽고 기하학적으로 솟아있었다. 마치 인위적으로 깎아 만든 조각품이 아닌가 싶을 만큼 정교한 절경 위로 하얗게 부서지는 거친 파도 소리가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기하학적인 육각형 돌기둥이 조화를 이루는 대포 주상절리대
푸른 웅덩이 바닷물과 절벽 수직 기둥의 경이로운 장관

공항으로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산방산 아래 위치한 '원앤온리' 카페였다. 웅장한 절벽 산방산을 그대로 본떠 만든 깜찍한 초콜릿 케이크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여정을 차분히 정돈했다. 가격대는 다소 있었지만 귀여운 빵 모양과 창밖 풍경이 안겨주는 운치 덕분에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가족들을 떠나보내고 지나온 사진들을 하나씩 훑어보니, 늘 익숙하게 거닐던 내 살던 동네 제주가 또 새삼스럽게 소중하고 그립게 다가온다.

산방산 형상을 한 시그니처 초콜릿 디저트와 원앤온리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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