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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바람

한여름의 문턱, 더위가 본격적으로 기승을 부리기 전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 문득 시원한 바람이 그리워졌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훌쩍 차를 몰아 대관령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선자령, 백두대간의 웅장한 줄기 위에 완만하게 솟아 ‘순한 산’이라는 별명을 가진 곳이다. 해발 1,157미터에 이르지만 등산로가 험하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밤의 고속도로를 달려 대관령으로 향하는 길.

겨울에는 눈꽃 산행지로, 여름에는 드넓은 초원과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빚어내는 이국적인 풍경으로 등산객을 맞는다. 하지만 내가 선자령을 몇 번이고 다시 찾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바람 때문이다. 그 바람을 맞이할 생각에 늦은 밤의 운전도 지루하지 않았다.

오르막길의 작은 저항

다음 날 아침, 등산을 앞두고 든든하게 배를 채우기 위해 숙소 근처를 둘러보다 의외의 장소를 발견했다. 이렇게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자리한 크고 깔끔한 스타벅스라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따뜻한 브리또로 아침을 해결하고, 정상에서 먹을 점심용 닭가슴살 샌드위치도 잊지 않고 챙겼다.

산행을 위한 든든한 아침 식사와 점심으로 챙겨갈 샌드위치.

드디어 선자령 코스에 발을 들였다. 사실 '등산'보다는 '걷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길이다. 그래도 중력을 거슬러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행위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지구의 거대한 힘에 맞서는 하찮은 저항이랄까. 그 저항의 대가로 얻는 성취감은 늘 짜릿하다.

본격적인 트레킹의 시작. 숲길이 시원하게 맞아준다.

선자령 코스는 옛 대관령휴게소, 지금은 양떼목장으로 더 유명한 곳에서 시작된다. 입장권을 끊고 목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다.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울타리 너머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으니까. 오히려 인파에 시달리지 않는 자유로운 양들의 모습을 공짜로 보는 셈이다.

등산로 옆 초원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는 양 떼.

숲길을 걷다 보니 발밑에서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흙 속에 몸을 숨긴 두꺼비였다. 가끔은 작은 새끼 뱀도 나타난다고 하니, 자연의 일부가 된 기분이 들었다.

등산길에서 마주친 작은 생명, 두꺼비.

정상,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바람

어느덧 정상. 벌써 다섯 번째 오르는 선자령이지만 감회는 늘 새롭다. 이번에는 일부러 평소와 반대 방향으로 코스를 잡았다. 늘 오르면서 보던 절경을, 이번에는 하산하며 여유롭게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가장 사랑하는 풍경을 마주할 시간만 남았다.

다섯 번째 마주하는 백두대간 선자령 정상 표지석.

정상을 지나자마자 거짓말처럼 시야가 탁 트였다. 드넓은 녹색 초원, 그 위를 유유히 돌아가는 거대한 풍력발전기, 그리고 바람. 선자령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풍경이다. 나는 이곳의 바람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 뺨을 스치는 바람은 땀을 식혀주고, 귓가를 맴도는 바람 소리는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지워준다. 이곳은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선자령의 상징, 광활한 초원과 거대한 풍력발전기.

꿈결같은 풍경에 취해 걷다 보니,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를 그만 지나치고 말았다. 다시 거슬러 올라가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다. 다음에 다시 와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겼으니까. 너무 지쳐 하산길에는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 내려오자마자 아침에 샀던 샌드위치를 우유와 함께 허겁지겁 먹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은 선자령의 시원한 바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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